내년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받는 생계급여(최저 생계비)가 처음으로 4인 가구 기준 200만원을 넘게 됐다. 올해만 해도 195만1287원이었는데, 내년에 207만8316원으로 12만7029원이 오르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각종 복지 제도의 잣대인 내년도 기준 중위 소득을 인상한 데 따른 결과다. 기준 중위 소득은 정부가 산정한 우리나라 가구 소득의 중간값으로, 복지 제도 80개의 대상과 지원 정도를 확정하는 기준이 된다. 생계급여의 경우 기준 중위 소득의 32%로 결정되는데, 기준 중위 소득이 인상되면서 따라 올라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77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를 열고 기준 중위 소득을 올해 609만7773원(4인 가구 기준)에서 내년 649만4738원으로 6.51%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날 의결로 4인 가구 기준 중위 소득 증가율은 역대 최고였던 올해(6.42%)를 넘어갈 뿐 아니라 지난 2022년부터 5년 연속 최고치 경신을 이어가게 됐다. 기준 중위 소득이 올라가면 각종 복지 수급액이 올라가고, 대상자도 늘어난다. 이번 인상으로 생계 급여 대상자가 내년에 4만명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매년 8월 1일까지 중생보위 심의·의결을 거쳐 다음 연도에 적용할 기준 중위 소득과 급여별 선정 기준 등을 결정하도록 돼있다.
이날 정부는 가구 구성원 수가 적을수록 올해 대비 내년도 기준 중위 소득 증가율을 더 높게 책정했다. 4인 가구는 6.51%가 인상됐지만, 1인 가구는 이보다 높은 7.2%, 2인 가구는 6.78%, 3인 가구는 6.64%다. 가구 구성원 수가 적을수록 소득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차등을 줬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초생활보장 수급 가구의 74%를 차지하는 1인 가구의 경우 기준 중위 소득이 올해 239만2013원에서 내년 256만4238원으로 17만2225원 올라간다. 5인 가구의 경우엔 올해 대비 증가율이 4인 가구보다 적은 6.31%다.
이날 결정으로 각종 복지 제도의 문턱이 낮아지고, 지원 폭이 늘어난다. 저소득층에게 생계비를 대 주는 생계급여뿐 아니라, 전월세나 주택 개보수 비용을 지원하는 주거급여, 입학금과 수업료·교과서비 등을 주는 교육 급여, 국민건강보험과 별개로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등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해 취업 취약 계층에게 취업 지원을 해 주는 국민취업지원제도,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국가장학금 역시 대상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급여별 선정 기준은 올해와 같다. 생계 급여는 기준 중위 소득의 32%, 주거급여는 48%, 교육급여는 50%, 의료급여는 40% 이하면 수급 자격을 얻을 수 있다. 1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생계 급여는 82만556원, 주거급여는 123만834원, 교육급여는 128만2119원, 의료급여는 102만5695원 이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생계 급여의 경우 자동차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할 때의 기준 등을 완화했다. 정부는 기준 금액 인상과 제도 개선으로 생계 급여 대상자가 4만명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부는 당초 오는 10월부터 적용하려던 의료급여 ‘정률제’를 내년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현재 의료급여는 진료 건당 일정 금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정액제’인데, 정부는 앞서 올 4월 이를 진료비에 비례해 부담금을 정하는 ‘정률제’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였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이 ‘저소득층 의료 문턱을 높인다’고 반발하자, 일단 내년까지 정액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의료급여 수급자는 외래 진료 시 의원에서 1000원, 병원·종합병원에서 1500원, 상급종합병원에서 2000원 등 정액만 부담하면 된다.
일부 시민단체가 요구해 온 부양의무제 폐지 등은 이번 결정에서 빠졌다. 부양의무자란 생계급여 등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의 부모나 자녀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과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수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시민단체들은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실제로는 가족 간 단절 등으로 경제적 지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 폐지를 요구해 왔다. 주거급여는 2018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지만 의료급여에는 아직 남아있다. 생계급여의 경우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지만 부양의무자의 연 소득이 1억3000만원 초과하거나 재산이 12억원이 넘으면 적용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빈곤층의 삶을 보듬겠다”고 했다.
☞기준 중위 소득
우리나라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에 있는 통계상의 ‘중위 소득’에 가구 소득 평균 증가율, 가구 규모에 따른 소득 수준 차이 등을 반영해 정부가 산정하는 수치. 80개 복지 사업에서 수혜 대상을 정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