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장애인 운동의 역동적 성장과 함께 장애학 담론이 국내에 조금씩 소개 되어 왔고 장애학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났으나, 국내에서 장애학을 수학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에 장애를 규정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과 맥락 등을 분석‧탐구하는 장애학 연구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2018년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에 국내 최초로 석사 과정이 신설되었고, 2020년에 박사 과정이 역시 국내 최초로 설치되었다. 그리고 지난 2월 23일에 드디어 장애인단체 활동가인 전근배 선생이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전근배 선생은 국내 장애학과에서 배출된 장애학 박사 1호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학위 논문 역시 매우 시사성이 높은 것이다.

전근배 선생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탈시설 장애인의 신체기능, 시설화 경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및 고립감 간의 구조적 관계’로, 탈시설 장애인의 고립감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연구이다.

고립감은 탈시설 장애인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탈시설 장애인의 고립감에 관한 연구가 아직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동안 탈시설화에 관한 국내 다수의 연구는 주로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인권실태나 국가 차원의 탈시설화 추진을 위한 제언을 다루었다. 물론 이는 탈시설화 초창기에 있는 국내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전근배 선생의 연구에는 전국의 탈시설 장애인 365명(만 18세 이상)이 참여하였으며, 장애인 동료 상담가와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127명의 면접원이 설문조사를 수행하였다. 응답자들이 생애 최초로 시설에 입소한 시기는 평균 15.7세였으며, 총 시설 생활 기간은 평균 23.5년, 탈시설한 기간은 평균 6.2년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 탈시설 장애인의 신체기능은 탈시설 이후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고립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애인 대상 연구에서 변수로서의 신체기능의 통상적으로 높은 영향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탈시설 장애인의 과거 시설화 경험이 탈시설 이후의 지원제도 체감도와 사회자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데, 과거 시설화 경험이 현재의 지원제도 체감도를 낮추어 사회자본을 낮추고, 이는 고립감을 높이는데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탈시설 장애인의 과거 시설화 경험이 과거에만 존재하거나 시설에서 물리적으로 퇴소한다고 하여 쉽게 감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의미하며, 현재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고립감에 유의한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끼친다는 의미이다. 즉,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통념상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오면 외롭다”고 여기지만, 이 연구 결과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시설에서 살았기 때문에 탈시설 이후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탈시설 이후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각종 지원제도의 체감도는 개인의 신체기능과 시설화 경험에 비해 사회자본과 고립감에 더 크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사이에 유의한 매개변인인 것으로도 확인되었다. 이는 탈시설 장애인이 피부로 와닿을 수 있는 지원제도 체감도를 높임으로써 개인의 신체기능이나 과거 시설화 경험에도 불구하고 사회자본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고립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유의미할 수 있음을 뜻한다.

다만, 이 연구에서는 널리 알려진 상식과는 달리 탈시설 장애인의 사회자본이 고립감에 유의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탈시설 장애인의 사회자본의 현재 수준이 관계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립감에 어떠한 영향을 줄 만한 변수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구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국가의 역할은 뚜렷해진다. 첫째, 국가는 시설화 경험을 가급적 미리 예방하고, 탈시설 이후 시설화 경험이 유지․연장되지 않도록 하며, 시설화 경험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장애인 정책의 전 과정이 장애인 당사자의 지원제도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탈시설 장애인이 시설 퇴소 이후 지역사회에서 상호작용하며 획득하는 사회자본의 안정적 형성을 위해 강한 국가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탈시설 장애인 지원을 위한 제도의 설계 시 주요한 평가지점 중 하나로 해당 제도가 장애인의 사회자본 형성을 촉진하는지 방해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는 정부나 공공기관, 민간 차원에서 수행한 국내 연구들 가운데 가장 많은 탈시설 장애인이 참여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사학위가 학문의 마지막이 아니라 독자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볼 때, 앞으로 전근배 선생이 국내 장애학 박사 1호로서 그저 현학적인 연구가 아니라 장애인의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는 현장감 있는 의미 있는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을 지도교수인 본인으로서 확신해 마지않으며, 이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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